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{"dataList":[{"id":0,"content":"아이는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을 들고 있었어."},{"id":1,"content":"그걸 쥔 손과 반대편에 있는 팔은 시종일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, 칼끝을 바라보며 흘리고 있는 진땀은 거의 비가 흐르는 듯한 모습이었지."},{"id":2,"content":"아이는 입에 물고 있는 굵은 밧줄을 잘근잘근 씹으면서, 또 한 번 자신의 팔뚝에 칼날을 가져다 대고 그었어."},{"id":3,"content":"비명과 신음, 그 어느 사이에 있을 법한 끔찍한 소리가 밧줄 사이로 조금씩 새어 나왔지만, 아이는 칼질을 멈출 생각이 없어."},{"id":4,"content":"오히려 더욱 빠르게, 여러 번 살갗을 헤집어 놓고 있었지."},{"id":5,"content":"칼날로 피부에 빗금을 채워 넣을 때마다 살갗은 벌어지고, 그 밑에 있던 문신이 조금씩, 아주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지."},{"id":6,"content":"아이가, 중지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야."},{"id":7,"content":"도시에 문신을 지울 기술이 없었을까? 절대 그렇진 않았을 거야."},{"id":8,"content":"아무리 중지의 문신이 다른 강화 문신보다 특별하다고는 해도, 방법을 찾는다면 분명히 해결책이 어딘가에 있었겠지."},{"id":9,"content":"하지만 아이는 그런 식으로 그 문신을 지워내고 싶지 않았던 거야."},{"id":10,"content":"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, 과거에 대한 창피함, 소속에 대한 낙인."},{"id":11,"content":"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, 사랑하는 사람의 어느 말을 듣고 분노와 질투에 떠돌며 들어간 중지."},{"id":12,"content":"그렇게 들어온 중지에 제아무리 오래 있어봤자 이대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."},{"id":13,"content":"그것들을 직접 제 손으로 후벼 파 놓아야만 벗어날 수 있고,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당히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…"},{"id":14,"content":"아이는 계속해서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는 거야."},{"id":15,"content":"먼 호수로 나아가면 그들의 추적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까. 어쩌면 아이는 그런 생각으로 배에 탔을지도 모르겠어."},{"id":16,"content":"…피쿼드호의 작살잡이로 일하면서, 아이는 많은 것들을 죽여와야 했어."},{"id":17,"content":"인어 지느러미살 육포를 만들기 위한 사냥부터 시작해서… 걸리적거리는 해적이나 심지어 고래들까지."},{"id":18,"content":"그 커다란 작살은 언제나 충실하게 선장의 명령을 따라 찔러졌고, 거두어졌어."},{"id":19,"content":"아이가 그런 일을 힘들어했던 것도 아냐."},{"id":20,"content":"이미 아이는 중지에 있었던 시절부터 무수한 사람들을 죽여왔으니까."},{"id":21,"content":"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…"},{"id":22,"content":"그때는 스스로의 선택이 그런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고."},{"id":23,"content":"지금은 스스로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해,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있겠지."},{"id":24,"content":"그 자는 분명 이렇게 말했으니까."},{"id":25,"content":"‘이 항해가 끝나면, 모든 것이 보장된다.’"},{"id":26,"content":"아이가 보장받고 싶은 미래, 아이가 진정 바라고 있는 방향, 아이가 꼭 다시 돌아가 만나고 싶은 연인."},{"id":27,"content":"아이는, 이 항해만 끝나면 그것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면서."},{"id":28,"content":"오늘도 문신 위를 찢고, 고래들을 꿰뚫고 있어."}]} |